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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공감/읽을거리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1편 - 토라 토라 토라(tora tora tora)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1편 - 토라 토라 토라

(tora tora tora)





1. 노구교 사건

 

이 노구교 사건이 일본과 미국이 사이가 틀어지게 된 계기입니다.

 

미국은 일본하고 그전까지는 크게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죠..

 

노구교 사건이 뭐냐하면...

 

일본이 중국땅을 차지하고 싶어서 일으킨 사건입니다.

 

1937년 7월 7일  이 노구교 근방에서 일본군 1개중대가 훈련을 하고있었습니다.

 

근데 야간훈련이 끝나고나서 노구교쪽에서 총성이 몇발 울립니다.

 

일본군은 즉시 중대점호를 했는데.... 말썽을 자주일으키는 신병 한명이 사라진걸 알게 됩니다.

 

중대 지휘관은 신병이 중국군들한테 잡혀갔다고 생각하고 중국군에게 


수색허가를 요청했지만 중국군대는 허수아비가아니죠. 당연히 안된다고 답변이 옵니다.

 

근데 포로가 된것으로 알았던 그 신병이 중대에 다시 나타납니다.

 

어디갔었냐고  다그치니까 이 신병이 화장실이 급해서 큰볼일(?)을 보러 고참들한테 말도없이 사라졌던겁니다.

 

그럼 사건은 종결되야 하는데 일본군은 이 사실을 숨기고 더 강경하게 수색허가를 재차요구하게 됩니다.

 

요 사건이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그 결과로 중국인 무려 1200만명이 학살을 당하게 되죠.

 

남경대학살도 이 노구교 사건이 발단이 된것입니다.

 

이 노구교 사건 때문에 미국은 일본에게 정이 확 떨어져서 이듬해인 1938년, 항공자재의 대일 수출을 전면 금지시키고

 

이듬해인 1939년에는 아예 미-일 무역협정 자체를 폐기해버립니다

 

어찌되었건 일본은 요시! 대동아공영권! 을 포기할 마음은 없었고

 

1940년 독-이-일 삼국동맹을 체결하게 된다

 

 

2. 대일 무역봉쇄

 

여기서 미국은 완전히 뚜껑이 열려버리게 되죠...

 

그래서 1940년부터 대일 경제제재가 시작됩니다.

 

1940년 7월 5일에 각종 전략물자 및 전쟁물자에 대한 대일본수출 금지 조치를 발령하고

 

곧 이어 같은달 26일 항공유 및 항공엔진 부품에 대한 일본 수출금지, 특정 종류의 고철에 대한 일본 수출금지를 발령합니다.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솥뚜껑, 밥숟가락까지 수탈해가던 시기가 이때부터입니다.

 

 

그리고 1940년 8월, 일본이 미국에 대해 외교적으로 항의를 하게 됩니다, 즉 속된말로 주댕이를 털음

 

당연히 미국은 가만있지 않죠.

 

그래서  9월 26일

 

'이시간부로 일본에게 어떤 종류의 철강, 고철 , 파철 어떤것이든 공급하지 않겠다!'

 

하는 전면 금수조치가 내려집니다.

 

이게 엄청나게 큰 타격을 주게 됩니다.

 

일본도 일단 질러논게 있으니 꼬리를 말 순 없었지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노에 수상이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을  팔지않으면 미국하고 전쟁도 불사함' 이라고 병크를 터뜨립니다.

 

어이가 없는 미국은 1940년 12월부터 1941년 1월까지 두 달동안 금수품목에 빠진 물건들을 모조리 리스트에 올립니다.

 

즉, 일본에게 물한방울 팔지않기로 한것입니다.

 

(사진에있는 사람이 '고노에' 고노에는 당시 일본내각을 나치당하고 똑같게끔 벤치마킹함)

 

 

3. 전쟁의 시발

 

이사람 말고 노무라 기치사부로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사람은 조금더 서구화, 즉 상황판단을 잘 할줄알았음

 

결정적으로 전쟁을 반대합니다.

 

그래서 고노에는 본인이 엄청나게 크게 저질러 놓은 일들을 '평화적'으로 치우기위해 노무라 대사를 미국에 급파합니다.

 

( 슬램덩크 감독같이 생긴 이사람이 노무라 기치사부로 ㅎㅎ)

 

아무튼 미국에 간 노무라는

 

"ㅠ ㅠ님들 제발 금수조치좀 풀어주세요" 하고 애걸복걸했지만

 

미국은 단호하게 나옵니다.

 

"너희들이 중국에서 철수하고 삼국동맹 탈퇴하기 전엔 어림도 없다 이새끼들아!!"

 

 

저게 일본 내각에 씨알이나 먹힐 소리겠나요?

 

어떻게 먹은 중국땅인데...그리고 대동아 공영권의 초석이 되는 일인데 그걸 두개 다 포기하라고?

 

 

일본은 이때부터 '만일의 사태'란 것에 대비하기 시작합니다.

 

만일의 사태가 뭐냐고요?

 

일본은 당시 미국으로부터 기름을 사서쓰고 있었고 그 의존률은 자그마치 90%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한달 기름사용량은 45만 킬로리터, 비축분은 950만 킬로리터

 

미국이 기름 딱 끊는 그 순간 일본은 아껴써도 2년안에 기름이 바닥이 나게됩니다.

 

즉,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2개

 

 

1. 전쟁포기하고 조용히 살기

 

2. 동남아에 아직 아무도 안캔자원들과 석유,가스가 엄청남. 이곳을 우리가 차지하기.

 

 

일본이 1번을 고를리가 없잖아...

 

그래서 일본은 '남방작전'이란걸 구상하게 됩니다.

 

이 남방작전이란 것의 내용을 보면...

 

1. 미 태평양 함대를 무력화시키고 남방 작전시 배후에 대한 위협 제거한다.

 

2. 당연히 남방 자원지대에 해쳐리를 편다.

 

3. 극동에서의 연합군세력 격파 (대표적인게 인도차이나, 베트남의 프랑스군)한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4. 남방 자원지대 방어에 필요한 외곽 방어선을 구축. -끝- 

 

뭐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일본은 미국이랑 전면전을 떠서 미국을 제압하려는게 아니고

 

일단 선타격 후 협상을 통해서 자기들도 세계의 일진임을 인정받길 원한거였습니다.

 

 

근데 1941년 7월, 동맹국가 독일의 코털이 가바기 독-소 불가침조약의 뒷통수를 치면서 소련하고 한판 뜨게 됩니다.

 

일본은 다민족 국가인 소비에트 연방이 이 독-소전쟁을 방아쇠로 분열할 거시라고 판단,

 

만주에 주둔중인 관동군을 16개 사단으로 증강해서 소련땅도 먹을 준비를 하게됩니다.

 

미국이 어떻게 했을까요?

 

미국은 1941년 7월 26일, 일본의 모든 해외자산을 동결해버렸고, 철강에 이어 일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석유수출도 전면 중단해버립니다.

 

그야말로 막판에 몰린 일본은 두달 뒤인 9월, 도요타 다이쥬 슨상이 존경해 마지않던 왜왕앞에서 내각회의를 가집니다.

 

회의 내용은 뭐 미국과 전쟁을 불사할 결심아래, 10월 하순을 목표로 모든 전쟁 준비를 끝마친다는 그딴 내용이었음.

 

한마디로 미친거죠

 

그리고 10월, 고노에 내각은 총사퇴하고 앞에서 들어본적있는 도조 히데키라는 일본인이 새 내각을 구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사람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 진주만 영화에서 본적이 있는것 같은데...?)


이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원흉...

 

어쨌든, 도조 히데키 내각이 전쟁을 결심하고 계획 하면서 태평양전쟁의 불씨는 당겨졌다고 볼 수 있죠.

 

 

 

4. 진주만 기습

 

 

왜 하필이면 진주만이었을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야마모토 이소로쿠란 사람입니다.

 

 

이사람은 당시 일본해군 연합함대 사령관이었는데,

 

일단 전쟁을 반대한 사람이었었죠.

 

그렇지만 군인으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괜찮은 놈이었고(칭찬하긴 싫지만 평가가 그렇네요.)

 

몇가지 예를 들자면 참모시절부터 거함거포주의는 앞으로 종결될거란걸 예견해서 항공모함과 함재기 개발을 하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온게 제로센과 96식 97식 함상기.

 

 

 일본에 음반을낸 어떤 걸그룹 음반에 떡하니 찍혀있는 모습.


 이건 96식 함상폭격기.


이건 육군용 97식.  색깔만 다름.

 

 

그런데 이 이소로쿠 중장은(함대 사령관인데 계급은 중장) 결정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이였죠.

 

근데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는 이소로쿠아니면 전쟁을 이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소로쿠는 한가지 조건을 걸게됩니다.

 

"미국과의 전쟁은 승산이 없다. 하지만 진주만을 기습해서 확실히 박살낸다면 가능성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진주만 기습작전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사령관 때려치우겠음'하고 못을 박아 버립니다.

 

 

5. 리바운드를 제압하면....

 

 

전쟁을 지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바다"를 지배하면 세계를 제압한다

 

(현재 미국이 해군전력이 전세계 해군전력의 70% 이상)

 

 

그럼 1941년 당시 세계 최강의 기동함대를 보유한 나라는 어디일까요?

 

미국?

 

 

 

 

정답은 일본입니다.

 

인정하기 싫지면 사실입니다.

 

항공모함이라는 전력을 해군 주전력으로 운용하던 국가가 일본이였습니다.

 항공모함 아카키



 그리고 얘가 항공모함 카가

 

 

이 두척의 항모가 진주만 기습을 성공시킨 일등공신이죠..

 

( 물론 미국도 렉싱턴호와 사라토가호가 있었지만 


그냥 정찰기 띄우는 용도로만 썼지 공격기와 전폭기 띄울 생각도 못함 )

 

그리고 체공시간이 7시간에 이르는 제로센이라는  함재기가 있었기에

 

개전초기 미국은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을 수 밖에 없었죠... ㅠㅠ


세계최강 미국이......

 

게다가 요즘 의대생보다도 더 엄격한 수료과정을 거친 일본 파일럿들은 중-일 전쟁을 통해 실전으로 단련돼있었고

 

동양인들을 무시하던 미국인들은 한번 크게 작살이 나게됩니다.

 

 

 

6. 토라 토라 토라

 

왜?

 

왜 하필이면 진주만일까?

 

당시 미국은 전쟁을 어느정도 감지하고 있었고

 

전쟁이 난다면 그 시작은 필리핀이나 미드웨이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일본에서 하와이 진주만까지는 무려 3천해리가 넘는 거리였고

 

진주만은 미국 최대의 해군기지로 주둔병력이 엄~청나게 많은 곳이였었죠.

 

지상군만 6만 가까이 있었고  미국 태평양 함대의 거의 모든 전력....

 

전함 9척, 항모 3척, 중순양함(스타크레프트에 비유하자면 배틀크루저) 2척, 경순양함이 18척, 디스트로이어가 무려 54척에 디젤잠수함이 22척이 여기 모여있었습니다.

 

게다가 전투가 가능한 항공기만 450대가 넘게 대기하고 있고

 

한마디로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기어들어갈 생각조차 못하는 그런 곳이였었죠.

 

 

근데 이소로쿠 그렇기 때문에 여기를 쳐야 한다고 생각했던것입니다.

 

미국이 극동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때 즉각 전력을 투입할 수 있는 최전방 기지가 진주만이었죠.

 

이래서 이소로쿠는

 

1.  태평양 함대 전력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힌 후

 

2. 동남에아에 해처리를 펴고

 

3. 멀티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면 미국과 협상을 해서 세계 일진으로 인정도 받고 미국 체면도 세워준다

 

뭐 이런 생각이었던것이죠.

 

 

그리고 1941년 11월 7일,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진주만 기습을 명령하고

 

D-day는 12월 8일로 잡았습니다.

 

작전 암호는 토라 토라 토라(tora tora tora)

 

그리고 진주만은 작살이 나게 됩니다.

 

모든것은 일본인들의 계획대로 맞아들어갔는데 한가지만 예상과 달랐던것입니다.

 

 

뭐냐면....

 

진주만이 박살이 나면서 미국은 일본과 전면전을 벌이길 꺼려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현실은 미국 전역에서 입대지원자가 줄을 잇는 것이었었습니다.

 

 

세계대전 태양평전쟁 1편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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